이병천-칼럼

[칼폴라니시평] 코로나 위기속에서, 칼 폴라니의 길을 따라

세세생생 2020. 4. 7. 17:41

[칼폴라니시평] 코로나 위기속에서, 칼 폴라니의 길을 따라


세계는 팬데믹으로 번진 코로나19 재난에 글로벌 경제불황이 겹쳐 글로벌 복합위기에 빠졌다. 오늘의 코로나 위기의 특징은 전파속도가 유례없이 빠를 뿐더러 그 부정적 역류효과가 누구의 예측도 불허할만큼 엄청나다는 것이다. 또 수요충격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봉쇄와 격리에 따른 공급충격 성격이 강해 통상적 수요부양책으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코로나19 위기가 언제 끝날지, 경제침체의 바닥이 어디까지일지 알 수가 없다. IMF에 따르면 세계 팬데믹의 불확실성지수(WPUI)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커졌으며 앞으로도 이 지수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한다. 적절한 대응조치가 지체될수록 재난의 타격은 전방위적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코로나 위기가 급속도로 글로벌 복합위기로 확대된 이유는 단지 위기가 예측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첫째, 코로나 위기이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순응 정책 때문에 위기에 대한 대응력 및 회복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신자유주의에 감염된 사회경제 체질이 일종의 ‘기저질환‘이 되었다고 하겠다. 공공의료 예산 및 투자를 대폭 감축시켰던 미국이나 이탈리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스,신종플루,에볼라,메르스 등 몇차례의 위기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역주행은 지속됐다.

둘째, 유럽 여러 나라들이 코로나 위기의 내습에 방심하고 위험한 ’집단면역‘ 정책을 선택했다.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집단면역 실험은 치명적 실패를 가져왔음이 입증된 듯하다. 영국의 경우, 총리가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할 처지가 됐다.

세째, 유럽에서 아시아인을 코로나19의 잠재적 보균자로 취급하거나 코로나 19가 아시아인에 특유한 것으로 간주하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확산됐다. 심지어 미국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중국바이러스, 우한바이러스라고 부르기를 고집했다.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초기대응에 실패한 데는 이런 편견에 큰 원인이 있다.즉,인종주의적 오만과 편견,혐오와 차별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위기를 심화시켰다.


코로나위기에 대한 각국의 방역대응방식은 다양하다. 방역을 위한 사회통제와 인권보호사이, 방역 대응과 경제살리기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가 큰 도전이다. 한쪽의 극단에 ‘방임적인’ 집단면역 방식이 존재한다(영국,스웨덴). 또 다른 극단에 고강도 권위주의적 통제방식(중국)이 존재한다. 한국의 방식은 이들과는 달랐다. 한국은 이 고약한 딜레마와 마주해 ‘민주적 관민협력’과 강제적 봉쇄 및 격리조치없는 ‘개방적 방역’으로 성공한 사례로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물론 한국식 방역방식은 감염자의 조사 추적이라는 댓가가 따른다.


하지만 코로나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은 불균등하다. 방역에 성공했다고 해서 사회경제 정책대응에서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방역에 실패한 나라가 다른 정책대응에서도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은 방역에 실패했지만 보수정부아래서도 경제사회정책의 대응력은 매우 높다. 반면 한국은 방역에 크게 성공했지만 경제사회정책 대응은 우려스럽다. 이 점에서 기재부가 제작해서 뿌린 한국모델 책자(영문)는 문제의 소기가 크다. 정부의 기업구제책은 일방적 퍼주기가 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방대한 대중들이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나아가 집권여당은 선거국면에서 부동산부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종부세 완화정책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조세정의에 반하며,대중의 주거권에 타격을 가하고 나라경제의 건강성을 해칠 것이다. 한국의 대응모델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종합적 성공여부는 아직 열려 있다.


여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만은 확실하다. 코로나위기가 시장의 거대한 실패를 폭로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시장이 코로나위기속에서 필수재인 마스크조달문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목도했다. 거대한 시장 실패는 미국모델에서 가장 예각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정부는 사상 초유로 대규모 경기부양정책을 제시했지만, 그것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대량실업에 대응하기도, 다수대중이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처한 비극적 상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이 바이러스 보건위기와 대량실업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칼 폴라니의 통찰대로 자기조정시장의 유토피아를 넘어, 보건의료, 노동, 토지 및 주택, 화폐및 금융 그리고 기업조직을 허구적 상품화 상황 및 그 심화 위험에서 빼내어 인간과 자연의 회복, 그 상생을 위한 실체적 경제를 재건하는 작업이 절실하고 시급하다. 사회적 연대경제와 커먼즈의 회복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 분야 관련 당사자들은 자율적 보호 운동은 물론, 코로나위기 극복을 위해 더 넓은 연대와 확장운동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부양책이 퍼주기식 대기업구제책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스티글리츠 기준). 사회공통자산을 탈상품화하고 실체적 경제를 재건하는 조건을 강제하는, 공정한 구제책을 시행해야만 한다. 우리가 이처럼 민주적 사회보호와 코로나위기로부터 정의로운 회복이라는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코로나위기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에 역사적 기회를 넘겨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때 파시즘이 뉴딜과 경합하면서 바로 그같은 기회를 가졌었다. 이것은 과거 경험이 주는 심각한 교훈이다.


코로나19 위기의 조속한 극복의 유일한 해결책은 국제협력과 연대를 위한 공동행동이다. 이 공동행동앞에 세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다.

첫째, 코로나 위기극복을 위해 정도와 방식은 다양하나, 물리적 거리두기와 봉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서로 출입국도 통제하고 있다. 이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한국모델은 개방적 방역의 길도 가능함을 일러주고 있다. 국제공조의 길에서 이것이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하다.

둘째, 코로나위기이전에 이미 이전의 초세계화 질서는 붕괴되고 각자도생의 글로벌 카오스 상황이 도래했다. 이것이 코로나위기 상황에서 글로벌 공동행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위기의 극복은 새로운 글로벌거버넌스 모색을 요구한다.

셋째, 보다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공동협력을 여는 능력도 내장하고 있지만, 각자도생과 부정적 외부성을 조정하는 약점도 갖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의 선상에서 공동협력을 가능케 하는 조건과 방식에 대해 새로운 깊은 성찰과 대안 탐구의 노력이 요구된다.


글로벌 협력 및 연대행동의 부재로 가장 고통받는 곳은 의료자원과 사회보호 체계, 경제력이 부실한 남측 빈국이다. 이는 글로벌 안전과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한시바삐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그룹(WBG), G20의 지도자들이 글로벌 코로나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각자도생을 넘어 글로벌 공동행동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공동행동은 글로벌 차원뿐만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도 진행되어야 한다.


코로나위기 방역에서 하나의 ‘글로벌 표준’을 제시했다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둔(지금까지) 한국은 이제 모방, 추격을 넘어 자신의 경험과 학습에 기반한 경로에 자부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은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남측 빈국 및 신흥국으로 돌려서 이들 지역에 구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