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라부아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 한국어판 서문
*한국어판 서문
이 책은 2004년 프랑스어판으로 처음 출간됐다. 그 이후, 서구에서 이른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가 끝나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세계경제가 크게 변화했으니 이와 관련한 후기를 2009년 수정·보완판에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여전히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가 세계 도처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는 방식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지만, 국제통화기금(이하 IMF)과 국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등 국제기구의 관점에는 다소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토마 피케티와 공동 연구자들이 지난 10여 년간 진행한 실증 분석 덕분에, 소득분배의 중요성을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고, 더 많은 국가들이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증가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IMF와 OECD 등 효율성과 소득 불평등 사이에 상충 관계가 존재한다는 관점에 동조했던 이들도 이제는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와 관련해, 독자들은 이 책의 제1장에서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의 본질적인 특징과 보조적 특징을 정의할 때 소득분배에 관한 논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지 모른다. 내가 포스트 케인스학파의 특징을 열거하면서 소득분배를 제외하자 이견을 제시한 동료들도 있었다. 이 책에서 소득분배를 주요 특징에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만의 특징을 밝히려 했기 때문이다. 소득분배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도 주요 관심 주제인 만큼, 포스트 케인스학파 특유의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득분배가 경제사상에서 포스트 케인스학파를 다른 비주류 학파와 구분하는 특징은 아닐지라도,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 이론에서 소득분배와 교섭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이 책의 모든 장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기업의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이자율이 소득분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실질임금이 총수요와 고용수준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논의할 때 명확해진다. 또한 장기 성장을 다룬 장 [제5장]에서는, 칼레츠키 학파의 성장과 분배 모형에 나타나는 ‘비용의 역설’을 논의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비용의 역설은, 단일 기업이 피고용자들의 임금 삭감 등을 통해 비용 마진이나 마크업을 증가시킬 때에는 그 기업이 확실히 이익을 얻지만, 모든 기업이 동일한 방식으로 실질임금을 낮추는 경우에는 경제가 둔화되어 모든 기업이 함께 취하는 이윤율이 상승하지 않거나 심지어 하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실질임금의 하락(혹은 이윤 몫의 증가)이 소비지출을 감소시키고, 이에 따른 총수요 감소가 투자를 비롯해 전반적인 경제활동을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 질문과 관련해 많은 실증 연구들이 진행됐다. 이 연구들은 국민경제가 임금 주도 경제인지, 아니면 이윤 주도 경제인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즉 이윤 몫의 증가가 총수요와 국내총생산(이하 GDP)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그 가운데 국제노동기구(이하 ILO)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외츨렘 오나란과 기오르고스 갈라니스(Ozlem onaran and Giorgos Galasnis 2012)의 연구를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G20 국가 모두에서 국내 총수요가 임금 주도적(이윤 몫이 증가하면 국내 총수요가 감소한다는 의미)으로 나타났음을 보였는데, 이 결과는 ‘비용의 역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출을 고려하면 실증 분석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즉 중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수출국들은 이윤 주도 경제이다. 다시 말해, 이 국가들에서는 이윤 몫이 증가할수록 전반적인 경제활동 수준이 높아진다. 이런 최근 실증 분석 결과들은 이 책에서 논의하는 내용과 긴밀히 연관된다. 이 책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개방경제에서는 (명목임금의 상승으로 달성한) 실질임금의 상승이 외국 기업에 대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에 대한 해외의 수요를 감소시킬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한 실증 연구에서는 대상 국가 및 분석 기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났으며, 특정 파라미터 값에서만 ‘비용의 역설’이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린다”(200쪽).
한국 독자들은 한국 경제가 임금 주도 경제인지, 이윤 주도 경제인지 궁금할 것이다. 오나란·갈라니스(Onaran and Galanis 2012)의 실증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국내 총수요 측면에서는 강한 임금 주도 경제이고, 소득분배의 변화가 순수출에 미치는 효과까지 고려할 경우에는 약한 임금 주도 경제이다. 따라서 이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면, 한국 경제에서 임금 몫의 증가는 소비지출과 국내 총수요에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GDP에 대해서는 약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혹은 적어도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출 성장을 강조하는 기존 전략에서 국내 수요 성장에 좀 더 중심을 두는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방경제에서 작동하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먼저, 모든 국가들이 수출 주도 전략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추구할 수 없다.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계경제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보면 순수출이 영zero일 수밖에 없는 폐쇄경제와 같다. 앞서 지적했듯이, G20 각국의 국내 총수요가 임금 주도적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전체로서 세계경제는 임금 주도 경제이다. 따라서 일부 국가는 이윤 몫의 증가(혹은 실질임금의 하락)에 따른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수출 주도 전략을 추구할 경우 세계경제는 위축될 것이다. 이는 요헨 하르트비히(Jochen Hartwig 2014)가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오나란·갈라니스의 분석과 다른] 다른 실증 분석 방법을 사용해 도출한 결론이다. 또한 세계경제의 임금 주도적 특성은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서 사용하는 대규모 계량 모형인 글로벌 정책 모형Global Policy Model(이하 GPM)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모형을 개발한 프랜시스 크립스Francis Cripps와 알렉스 이주리에타Alex Izurieta는 GPM 모형에서 “마크업의 상승은 최종 수요와 GDP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그 악 영향의 정도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언급한다(Cripps and Izurieta 20147-8)
더욱이 오나란·갈라니스(Onaran and Galanis 2012)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차원에서 각국의 이윤 몫 증가는 순수출을 고려할 때 약한 이윤 주도경제인 많은 국가들(중국·아르헨티나·멕시코·인도 등)에서 총수요에 부정적인 효과를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모든 국가에서 이윤 몫이 동시에 증가할 때 GDP가 크게 위축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는 세계 GDP의 위축에 비해 두 배 정도 큰 수치이다.
따라서 앞서 살핀 추정치를 신뢰한다면, 한국에 최선의 길은 G20회담을 비롯한 국제 포럼이나 ILO, OECD 등의 국제기구에서 미래를 의제를 논의할 때 임금 우호적 분배 정책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이다. 엥겔베르트 스토크함머와의 공동 연구(Lavoie and stockhammer 2013, 34)에서 주장했듯이 이는 임금 몫을 늘리고 임금격차를 줄이는 분배 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 같은 분배 정책으로는 최저임금의 증가 혹은 최저임금제 도입, 사회보장제도 강화, 노동조합법 개선, 단체협약 범위 확대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친노동자 정책들은, 과거 서구와 한국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류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이 지지하는 노동 구조 개혁과는 정반대에 위치해있다. 노동 구조 개혁은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개선한다는 희망 아래 일자리 불안을 야기하고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약화시킨다. 이에 맞선 대안 전략이 필요하다. 실증적인 증거를 보면, 한국에서는 임금 몫이 낮더라도 민간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나지 않으며, 한국이 자신의 방식대로 임금 우호적 분배 정책을 실행할 경우 한국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실질임금 상승이 생산성을 높이고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실증적 증거는 충분하다(Storm and Naastepad 2013; Hartwig 2014). 따라서 임금 주도 성장 전략은 경제의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 모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 이런 친노동자 분배 정책은 균형재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확정적 재정정책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IMF 관료들도 인식하고 있듯이,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는 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통해, 위기 시기에 정부 지출 승수government spending multipliers가 그 이전에 확인된 승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증명됐다. 잘 갖춰진 공공기반 시설이 민간 경제활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사실 못지않게, 정부 지출 또한 총수요[를 증대하는 데]에 매우 바람직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지금처럼 이자율이 낮은 환경에서 특히 그렇다.
마크 라부아, 『포스트 케인스학파 경제학 입문』,p.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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