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칼럼

바보 노무현 서거 12 주기 - 대한민국 재생의 윤리 / 이병천

세세생생 2021. 5. 23. 19:20

[‘노무현 이후남겨진 과제] 대한민국 재생의 윤리 (2006. 6.4일자. 한겨레 신문 )

 

사람이 사는 법과 죽는 법은 저마다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 생애를 허공에 던져, 죽어서 다시 살아난 사람이 되었다. 500만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모 행렬이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안해 하며 명복을 빌었다. 죽어서 부활하여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겉은 살아 있으되 속은 텅 빈, 사실상 죽은 모양이 되었다.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선 것은 검찰과 보수언론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고인의 비극적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비판, 이 정권의 정치보복이 그 죽음을 불렀다는 무거운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됐다. 이 부메랑과 업보를 어찌할까.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가 뒤바뀌었다. 역사의 법정은 죽은 노무현에게 무죄를, 산 이명박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 모두가 그가 던진 숙제를 풀면서 슬픔과 분노를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이 새로운 사람 사는 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노무현 이후의 과제를 논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도 개혁을 말한다. 그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이에 충분히 동감하면서 이와 좀 다른 각도에서 대한민국의 재생을 정초할 윤리적 토대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공존과 화해. 비극은 이명박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나아가 정치적 경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 이를 제거해서 내가 살겠다는 생각, 즉 적과 나의 흑백 이분법에서 비롯했다. 한국 주류는 비주류 대통령을 참을 수가 없었다. 피의 보복으로 얼룩진 야만과 광기의 이분법은 냉전 반공 구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 정부 및 참여정부 시기 잠시 치유됐던 그 상처를 이명박 정부가 다시 칼질해 광기를 부활시켰다. ‘적대에서 공존으로 가는 길은 이명박 정부와 주류의 결자해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죽은 자는 원망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진정성과 존엄. 죽은 자는 운명에 대해 말했다. 어떤 운명인가. ‘바보로서의 운명적 정체성 아니겠는가. 정치란 출세·권력·명예를 추구하는 것, 어떤 수단을 쓰든 이겨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치는 더럽다. 대한민국도 더럽다. 그러나 죽은 자는 실패할 줄 알면서 가시밭길의 비주류, 아웃사이더로서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의 진정성, 그리하여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이로써 그의 죽음은 또한 우리 민주공화국의 고귀한 윤리적 영혼을 살려냈다고 하겠다. 그의 죽음은 공화국과 시민의 정화와 생환을 위한 죽음이 되었다. 진정성과 존엄은 민주공화국의 토대 윤리가 되어야 한다.

 

소통과 서민성. 죽어서 산 자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누구와도 쉽게 소통하고 대화하려 했다. 소통은 시민적 윤리인 동시에 공화국이 살아숨쉬는 기본적 교류방식이 되어야 한다. 서민성은 소통과 단짝을 이루는 정치윤리인데, 이 또한 지도자의 자질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체의 근본 윤리가 돼야 한다. 소통이 말이 통한다’, ‘이성과 합리가 통한다는 의미라면, 서민성은 말과 이성보다는 감성적 공감과 동질감을 말한다. 서민이란 귀족·엘리트·특권·부자와 대비되는 소외계층·사회약자·민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민을 배제하고 잠재적 폭도로 간주하며 1% 강부자를 위하는 먹통나라가 아니라, 서민이 정당한 권리 지분과 평등한 자유를 공유하면서 소통의 광장이 열릴 때, 그 활력 위에 사람 사는 세상, 광장이 있는 민생민주공화국이 꽃필 것이다.

노무현의 부활은 그가 남긴 실패의 부활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큰 바보, 노무현의 죽은 것을 죽게 하고 산 것을 살게 해야 한다. 폭넓은 연대 위에서 진보의 새 길을 여는 것이 산 자의 과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7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