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이병천, 스티글리츠 깊이읽기

세세생생 2017. 7. 1. 19:18

[쟁점서평] 시장의 불완전성 점점 커진다? (교수신문, 2003년 3월 24일)


시장경제이행론의 기본요소 제시…‘가버넌스’ 문제 해결 강조
2003년 03월 24일 (월) 00:00:00이병천 / 김영두 webmaster@kyosu.net

한국 경제가 제2의 IMF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지난 1997년의 악몽을 함께 겪은 동아시아 경제블록 전체가 위기라는 말도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질서를 금융주도의 시스템으로, 자국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 놓은 미국도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전세계 자본주의가 공황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의 맏아들이 쥐고 있는 것 같다. 그 블랙홀 같은 시장의 질서와, 속성과, 특징을 향해 분석의 시선을 던질 때다.


●스티글리츠 깊이읽기 : 『시장으로 가는 길』(강신욱 옮김, 한울 刊), 『스티글리츠의 경제학』(김균 외 옮김,  한울 刊), 『세계화와 그 불만』(송철복 옮김, 세종연구원 刊)

최근 ‘시장으로 가는 길’이 출간됨으로써 한국에 스티글리츠(J.E. Stiglitz)의 주요 저서 세 권이 번역돼 나왔다. 번역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세 권 중 특히 ‘시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전문적인 서적일 뿐만 아니라, 용어와 문장도 난삽해 번역자의 고통이 여간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역자인 강신욱 박사의 노고를 치하하며 격려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세계 경제학계의 선도적 경제학자 중의 한 사람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는 센(A.K.Sen) 과 더불어 몇 되지 않는 진보적 경제학자의 학문 세계를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마샬과 사뮤엘슨을 넘어서는 경제학 교과서


‘시장으로 가는 길’(원제목은 사회주의는 어디로Whither Socialism이다)은 좁게는 정보경제학, 넓게는 제도경제학의 기반 위에서 원리론적 수준에서 신고전학파 자유시장 패러다임―과 그 쌍둥이 형제인 시장 사회주의론―의 근본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시장경제 패러다임과 시장 경제 이행론의 기본 요소를 제시한 책이다. 스톡홀름 경제 대학에서 했던 빅셀 기념 강연의 내용을 확장한 저자의 이론적 주저다. 여기에는 20여년 간에 걸쳐 축적해 온 그의 연구 성과의 주요 내용들이 온축돼 있다.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은 자신의 눈으로 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변화상과 낡은 교육 현실의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학 입문자들이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여진 현대 경제학 원론서다. 여기에는 1백년전의 마샬, 50년전의 사뮤엘슨의 교과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교과서 체계가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세계화와 그 불만’은 세계화의 ‘깨어진 약속’에 대해 비판한 그의 가장 최신 저작이다. 흔히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IMF의 글로벌 구조조정 프로그램 즉 안정화, 규제 완화, 민영화, 그리고 개방화=자유로운 자본 이동으로 짜여진 정책 패키지와 정책 수립 및 결정 방식의 불투명, 무책임성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세계화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주의적 좌파가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근본주의적 우파는 자유시장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주 강고한 이론적 성채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시장적 삶의 고통과 고달픔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 시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 이론 세례의 마술 효과 및 그 전염 효과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시장 유토피아를 떠받치는 신고전학파 패러다임의 중핵을 깨트리는 것은 대안적 패러다임 수립의 기본 관문이다.


원리론의 수준에서 스티글리츠 경제학의 핵심은 바로 이 과제를 끌어안고 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현대판이라 할 신고전학파 패러다임에 따르면, 자유 경쟁시장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해 시장이 청산되는 일반 균형을 낳는다. 이 균형은-파레토-효율적이다(후생경제학의 제1정리). 그리고 경쟁 시장의 효율성의 문제와 분배의 문제는 깔끔하게 분리될 수 있다(제 2정리).

스티글리츠는 이 정리가 깔고 있는 완전 정보의 가정, 그리고 미래시장과 위험 시장을 포함한 완전한 시장 집합의 가정이 비현실적임을 문제삼아 그 허구성을 폭로한다. 그래서 알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도, 존재한 적도 없으며 그 때문에 볼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티글리츠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 단지 후생경제학의 기본 정리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지 않고 한층 더 광범하게 수행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신고전파가 誘因, 할당을 비롯한 비가격기구, 경쟁, 혁신, 분권화와 집권화, 그리고 소유권 제도 등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와 관련된 일련의 핵심 문제군에 대해서, 그 진정한 의미와 폭넓은 역할을 거의 해명하지 못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이 가운데 정치경제학의 논의와 겹쳐지는 소유권 문제에 대한 견해만 보면, 그는 널리 퍼져 있는 ‘소유권의 신화’, 즉 사적 소유권을 잘 정립하면 경제 문제가 잘 풀린다고 보는 코즈의 정리―이는 노스의 제도경제사학으로도 발전됐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국공유 기업의 민영화보다도 경쟁 규율의 창출과 주인 대리인 문제에 내포된 경영 유인 문제, 더 넓게는 가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는 것이 스티글리츠의 견해다. 이점은 교과서 ‘스티글리츠의 경제학’에서도 여러 곳에서 힘주어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다.


노동자 참여 늘리는 경제 조직형태 연구필요


대안 경제질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견해는 무엇인가. 그는 사회주의 실험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구사회주의 경제들은 부의 평등을 달성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위치에 있다. 그것은 아마도 시장경제에서는 이뤄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이룰 수 없는 정도의 평등이다. 그들은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 “정부 소유는 분명히 만병통치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실험의 여지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노동자의 참여와 소유를 더욱 더 허용하는 경제적 조직형태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의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평등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견해는 단일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논의에서는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경쟁 구도보다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경쟁 구도가 많이 등장하며, 사회민주적 시장경제가 옹호된다. 얼마 전 한국 방문에서도 그런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보통 스티글리츠는 경제학 이론 계보상으로는 뉴케인지언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 분류법은 같은 뉴케인지언에 속한다고 하는 멘큐가 최근 부시의 진영에 가담한 것으로 본다면, 스티글리츠의 일면만 가리키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정보의 불완전성과 비대칭성에 초점을 맞추는 스티글리츠의 이론이 정보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시장경제의 불안정성, 투기성을 강조하는 포스트케인지언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더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스티글리츠가 그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는, 평등주의적 자산 분배에 기반한 대안의 길을 제시하는 급진 제도정치경제학 진영(보울스와 진티스 등), 나아가 시장 사회주의 진영(뢰머 등)이 나타난다. 법적 소유의 사회화를 우회하는 점에서는 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더 급진적인 ‘계급권력 없는 자본주의’의 대안(블록) 또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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